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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조서
파트 1
2016년 12월 31일 오후 8시 42분
사건번호 124.678.21-001
공식 경찰 조사 기록
― 1쪽 시작 ―
수사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에릭 쏜 씨, 몇 가지 질문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릭 쏜 테사는 어디 있죠?
수사관 저는 찰스 포스터 경위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테렌스 뉴먼 형사. 공식적인 현재 날짜 및 시각은 12월 31일 오후 8시 42분. 이 조사는 녹화됩니다.
에릭 쏜 테사가 여기 있나요? 같은 건물에 있나요?
수사관 에릭 쏜 씨, 앉아 주십시오. 지금 범죄 수사 진행 중입니다.
에릭 쏜 테사가 어디 있는지 말해요!
수사관 진술을 들을 때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에릭 쏜 테사가 안전하기는 한 거죠? 그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죠?
수사관 협조를 빨리해주실수록 모든 일이 빨리 정리될 겁니다.
에릭 쏜 알겠어요. 알았다고요. 알고 싶은 게 뭡니까?
수사관 감사합니다. 기록을 위해 당신의 성과 이름, 생년월일, 직업을 말씀해주십시오.
에릭 쏜 에릭 테일러 쏜. 1998년 3월 18일생이요. 세 번째가 뭐였죠?
수사관 직업.
에릭 쏜 그건… 저도 이젠 잘 모르겠어요. 골라 보세요. 가수, 작사가, 배우, 속 옷모델, 프로페 셔널 미디어 관종? 이것도 직업이 되나요?
수사관 괜찮습니다. 에릭 쏜 씨. 쉽게 생각하세요. 몇 분이면 끝날겁니다.
에릭 쏜 변호사가 있어야 하나요?
수사관 언제든지 변호사를 부르실 수 있습니다.
에릭 쏜 제가 구속된 건가요?
수사관 그냥 질문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더 빨리 진술해주실수록 더 빨 리….
에릭 쏜 알겠어요. 알았다고요. 뭘 알고 싶은지 말씀하세요.
수사관 처음부터 시작합시다.
에릭 쏜 처음? 처음이요? 음반 계약 맺은 날부터요? 아니면, 처음 기타를 들었던 날? 그때 전 네 살쯤이었어요.
수사관 테사 하트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당신과 테사 하트 씨가 처음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에릭 쏜 트위터로요. 지난여름에요. 8월쯤이었던 것 같네요. 사실은 그 전부터 시작됐죠. 계정을 만들기도 전에… (멈춤)
수사관 말씀을 계속하세요.
에릭 쏜 사실… (멈춤) 사실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모든 건 지난 6월에 도리안 크롬웰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아시죠? 보이밴드 멤버였던 도리안 크롬웰.
수사관 이 사건이 도리안 크롬웰에게 일어난 일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에릭 쏜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죄송합니다. 제가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죠. 그 냥 그 이야기가 여기저기 뉴스에 다 나왔었다는 거예요. 그 어처구니없는 여자애와 얽힌
재판이 있었죠. 그게 다 걔를 팔로우하다 생긴 일이라니까요.
수사관 여전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도리안 크롬웰 사건이 당신과 테사 하트 씨의 관계에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에릭 쏜 그게 좀 웃기는 게, 그 얘기를 듣자마자 딱 알겠더라구요. 도리안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지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사람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았을 때 자기가 어디 있었
는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하죠. 9.11 테러 때도요. 저한테는 이번 일이 그랬어요. 산타 모니카 프리웨이를 달리면서 라디오로 탑 40가 나오는 걸 듣고 있었는데, 12위 곡
중간에 속보가 끼어든 거예요. 무심히 듣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상했어요. 음악을 중간 에 끊을 정도면 무슨 큰일이 났다는 뜻이잖아요?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분 명치 않았어요. 진상이 규명되기까지 며칠이 걸렸죠. 그 여자애, 그 팬 말이에요. 그때 그 방송에서는 그게 살인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사망자가 도리안 크롬웰이다, 그렇게 만 말했죠. 딱 이렇게 말했어요.
“포스 디멘션의 리드 보컬 도리안 크롬웰이 오늘 아침 런던 템스강에서 엎어진 채 떠 있 는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1
투사
2016년 8월 12일
“그건 강박이 아니라 투사예요.”
“투사요?”
테사는 지난 30분간 땋았다 풀었다 하고 있던 긴 갈색 머리 타래에서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심리치료사 닥터 리건의 눈을 머뭇머뭇 쳐다보았다.
“일반적인 방어기제죠.”
오늘도 닥터 리건의 음성에는 백색소음 기계가 인간이라면 딱 저렇겠지 싶게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말을 하면서 불편한지 몸을 튼다. 야트막한 핑크빛 빈백 의자에 발목을 교차하고 앉아 전문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원래는 치료실에서만 환자를 만나는데, 테사에게는 예외를 두어주었다.
테사는 닥터 리건의 스타킹으로 시선을 내렸다. 무릎 부분이 팽팽하다. 내키진 않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서부 텍사스의 더위에 저런나일론 스타킹이라니,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다. 그에 비해 테사는 민소매 상의에 날씬한 허벅지를 살짝 가리는 정도의 잠옷 겸용 짧은 반바지 차림이다.
“그래요, 투사.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의 책임으로 전가할 때 쓰는 용어인데, 테사의 경우엔 그 상대가 연예인인 거죠.”
“하지만 저는 에릭 쏜을 만난 적이 없어요. 콘서트에도 한 번도 못 가봤고.”
닥터 리건은 테사의 <마음일기>를 집어 맨 앞장으로 넘겼다. 표지에 온통 그려진 낙서를 보고도 아무런 말이 없다. 온통 하트 뒤범벅에 숲속 동물들과 눈 없는 얼굴이 그려져 있건만.
‘투사는 무슨.’하며 테사는 콧등을 찡그렸다. 닥터 리건이 제대로라면 테사가 자기를 쳐다보는 남의 시선을 그림으로도 못 견뎌하는 점을 짚었어야 할 것이다.
닥터 리건은 테사가 초반에 쓴 일기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 이야기를 해봐요. 이 사람의 무엇이 뭔가 글을 쓰게 할 만큼 테사의 관심을 끌었는지?”
“에릭이요?”
테사는 스프링 철이 된 일기장을 받아 리건이 가리킨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그때 아마 TMZ를 보고 있었을 거예요. 에릭이 <프리티 리틀 라이어스>에 출연 중인 어떤 여자배우랑 뉴욕 시내를 걸어 다니는 게 파파라치한테 찍혔거든요. 혹시 에릭이 그 여자배우와 사귀는 거 아니냐고들했죠.”
“그 얘기는 안 썼는데?”
“당연하죠. TMZ 본 적 없으세요? 그 방송은 팬픽이나 다름없어서 믿을 게 못 돼요.”
닥터 리건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표정다운 표정이 처음으로 나왔다. 코에 걸쳐진 뿔테 안경을 위로 치킨다.
“그럼 여기에 쓴 내용에 관해 말해봐요.”
태사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파파라치의 동영상을 본 순간 얼마나 가슴 철렁했는지. 그때를 떠올리자 마음이 편치 않다. 에릭과 여자배우….
데이트 중인 것 같진 않았다. 전혀 아니다. 영상 속의 에릭은 성큼성큼 걷는 속도를 높이다가 어깨너머로 슬쩍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카메라가 그를 더 확대해 잡았다. 파란 두 눈이 쏘는 듯이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뒤이어 그 얼굴에 비친 표정은….
“새 여친이 생겨서 행복한 사람 같지 않았어요. 제 눈에는요.”
“그럼 어떻게 보였어요?”
테사는 눈을 감았다.
“무척 겁에 질린 것처럼요.”
“좋아요. 테사.”
닥터 리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칭찬해주었다.
“그럼, 그게 테사의 심리 상태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 말씀은, 지금 이게 그냥 다 제 상상이라는 건가요? 겁에 질린 사람은 에릭이 아니라 바로 저라는?”
그 말에 닥터 리건은 앞으로 몸을 쑥 내밀더니 흰머리 한 가닥을 귀 뒤로 넘겼다. 테사는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제가 겁내는 일 중 하나겠죠. 복잡한 길거리를 누가 따라오는 줄도 모르고 걷는 거….”
닥터 리건은 테사의 일기장을 집어 표지를 덮었다.
“좋아요. 계속해 봐요.”
“이번만 그런 게 아니에요.”
테사는 혼잣말하듯 말했다.
“에릭이 카메라를 응시할 때마다 두려움이 스치는 게 보여요.”
“무엇을 두려워하는데요?”
“무언가에 겁을 먹은 것 같은. 겁을 먹었거나, 또는—”
테사는 적당한 단어를 고르느라 말을 멈췄다. 일기장 표지를 바라보다가 자기가 그린 아기사슴에 눈길이 멎었다.
“아마도 쫓기는 듯한? 잘 모르겠어요.”
“매우 흥미롭군요, 테사.”
“정말이요? 흥미롭나요?”
테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롭다’는 말은 오로지 한 곳에만 생각이 쏠린 환자에게 쓰는 모호한 정신과 용어 중 하나일 거다.
테사는 마음챙김 연습을 하려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결국엔 에릭 쏜에 대해 썼다. 상상으로 정교하게 구성한 글로 이미 일기장 두 권을 채웠다.
“이런 게 건강한 건 아니죠, 예?”
그러자 닥터 리건은 노란 메모장을 꺼내더니 짤막하게 글을 적었다.
“자신의 불안감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 그 불안감을 탐색하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고 있다면 사실 꽤 유용한 방법일 수도 있어요. 이 연예인에 관한 테사의 이론이 지난 6월에 있었던 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요.”
테사는 볼멘 소리로 대답을 대신한 뒤 무릎을 더 꽉 끌어안았다. 지난 6월 그녀는 뉴올리언스에 있었다. 청소년을 위한 창의적 글쓰기 8주 짜리 여름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8주간은 거기에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반이나 남긴 채 자기 집, 자신의 안전한 방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여름이 거의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요…. 제가 준비될 때까지는… 안 그래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요, 테사.”
닥터 리건이 손을 들어 테사를 진정시켰다.
“숨쉬기 기억하죠? 그래요, 바로 그거.”
테사는 침을 삼켰다. 불안감이 점점 부풀어 오르자, 신경을 딴 데로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편인 에릭에 정신을 집중한다. 에릭. 에릭 쏜. 테사는 머릿속으로 에릭의 이름을 되뇌며 폐 속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5초간 숨을 참으며 신경을 진정시켜야 하는데, 이럴 때 쓰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 에릭 하나… 에릭 둘… 에릭 쏜…. 제 가슴이 서서히 부푸는 것을 지켜본 뒤, 긴장이 풀릴 때까지 어깨를 추욱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