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없는 라푼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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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이 나를 이 탑에 가뒀다.

   지난 15년간 나는 백설의 포로였다. 한 여자애가 미쳐버리고도 남을 세월. 내가 좀 더 어릴 때는 이따금 밖에 나가 눈밭에서 놀게 해주기도 하더니 이젠 그마저도 없다. 이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란다. 백설 말에 따르면, 우린 지금 ‘어둠의 시대’에 살고 있단다.

   어이쿠, 무서워라.

   내가 진짜 화가 나는 건, 여긴 사실 ‘내 나라’라는 거다. 백설은 자기가 여왕이 될 수 있었는데 오래전에 그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왕위는 여동생인 내게 돌아오는 거 맞잖아? 지금 이 나라의 왕좌는 내 것이어야 했고, 내 것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이 거지 같은 탑에서 반드시 탈출한다. 왕국을 뒤덮은 숲을 가로질러 성을 되찾아야지. 마땅히 내 몫인 여왕 자리에 올라, 친구들을 죄다 불러놓고 성대한 파티를 열어야지.

   그리고 어쩌면 이 머리도 자르게 될지 몰라.

1

X

   백설이 창밖에서 소리쳤다.

   “라푼젤! 머리를 내려주렴!”

   이곳에도 문은 있다. 탑 위로 오르는 계단도 있다. 한때는 백설도 문과 계단을 이용했다. 하지만 심술궂은 여왕이 이 나라를 차지한 뒤로 문을 얼음으로 봉해버렸다. 백설은 마법을 그런 식으로 쓴다. 내 발은 지난 5년간 눈을 밟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백설은 그런 쪽엔 신경도 쓰지 않는다.

   파이프 오르간 앞 의자에서 몸을 돌려 미끄러져 내려갔다. 하여튼 꼭 요럴 때만 방해를 한다니까. 흥이 딱 오른 부분에서. 뱀처럼 긴 붉은 머리채를 질질질 끌며 창가로 다가갔다. 지긋지긋해 죽겠네, 진짜.

   창은 두꺼운 유리 두 개가 달려 양옆으로 활짝 열게 되어 있다. 유리창을 젖힌 후, 땋은 머리채를 어깨 앞으로 이영차 넘긴다. 길고도 긴 머리채를 팔에 둘둘 감으며 모아모아, 창문 위에 튀어나온 쇠고리에 건다. 땋은 머리채가 백설이 서 있는 곳까지 줄줄줄 내려간다. 아래에서 당기는 느낌이 들면 비척비척 뒷걸음질 치면서 두 손을 번갈아 바꿔가며 머리채를 끌어올린다. 쇠고리에 걸린 내 머리채에서 끼릭끼릭 소리가 낸다. 무슨 암소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물론 암소를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마침내 백설이 위로 올라와 창문을 넘어섰다. 발목까지 닿는 흰 모피 외투를 입고 있어서 두 배로 무거웠다. 하여간 매번 꼭 땋아놓은 내 머리채 사이에 발을 끼워 넣어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지. 오늘도 또 팔길이만큼의 끄트머리는 풀어서 빗질한 뒤 다시 땋아야겠네.

   “내 생강빵 가져왔어?”

   내 숨결이 들이닥친 차가운 공기에 하얗게 얼어붙는다. 창문을 꼭 닫았다.

   백설이 바닥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백설에게서 신선한 공기, 산딸기, 희미한 소나무 향이 난다. 나는 냄새를 잘 맡는다.

   “그러려고 했는데, 파는 데가 아무데도 없었어. 요즘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대.”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내 오르간 앞으로 걸어갔다. 오르간은 거대한 악기다. 오래된 파이프가 기도하는 사람의 손 모양새로 우뚝한 가운데를 중심으로 벽 전체를 뒤덮다시피 줄줄이 서 있다. 나는 발건반에 발을 올린 뒤 새하얀 손건반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징징 울리는 톤 높은 음악이 탑 안을 가득채운다.

   바구니를 든 백설이 나를 지나쳐 아래층으로 쿵쿵대며 내려간다. 이 탑의 방들은 둥근 공간이 각 층에 하나씩 있는 모양새다. 오르간이 있는 방은 제일 꼭대기, 유일하게 창문이 달린 방이다. 우리 탑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데, 백설의 말로는 내 연주 소리가 숲을 지나 멀리까지 퍼진단다. 하지만 이 탑 근처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다들 너무너무 두렵거든. 내가 아니라, 백설이.

   ‘눈의 여왕’이.

   백설이 다시 위로 올라왔다. 나는 연주를 중간에서 끊고 빙그르 돌아앉았다. 발밑의 머리채가 고양이 꼬리처럼 내 다리에 휘감긴다.

   “제빵사한테 생강빵을 구워달라고 했어야지. 너한테 잘 보이려고  틀림없이 들어줬을 텐데.”

   “빵 구우려면 오래 걸려.”

   백설은 팔에 딱 맞는 소매에 전체적으로 아무 장식 없는 흰 울 드레스를 입었다. 곧고 검은 긴 머리는 풀어 놓았다. 그래도 내 머리만큼 길지는 않다. 나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지만, 겉보기엔 거의 내 또래 같다. 백설이 가진 얼음 마법은 젊음까지도 얼려놓았다.

   나는 눈을 흘겼다.

   “내가 어디 가기라도 해? 나라면 생강빵이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겠다!”

   “그랬으면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며 성질을 부렸겠지.”

   “그래서 저녁거리로 뭘 사 왔는데? 또 맨날 먹는 빵이랑 치즈?”

   “무화과도 조금.”

   백설이 말을 웅얼거렸다.

   “난 생강빵이 먹고 싶다고!”

   건반을 내리치자 오르간이 웅웅 울렸다. 백설이 움찔 뒤로 물러선다.

   “라푼젤, 제발 좀. 거기서 여기가 얼마나 먼 줄 알아?”

   “그게 내 잘못이야?”

   나는 가슴에 한 손을 얹었다.

   “우린 성에서 살 수도 있었어! 원하는 음식은 뭐든 실컷 먹으면서. 하지만 그 반대지. 너 때문에 우린 여기 이렇게 겁쟁이처럼 숨어 살잖아!”

   “이 나라는 위험해!”

   백설이 소리쳤다.

   “오늘 소문을 들었는데―.”

   “난 생강빵이 먹고 싶다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오르간 위 악보를 집어 백설에게 내던졌다. 악보가 이리저리 날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생강빵! 아니면 이젠 눈물도 없어.”

   백설이 나를 쳐다본다.

   “그건 안 돼.”

   “안 돼? 아, 그럼 이젠 나도 울 필요 없겠네.”

   팔짱을 끼고 피식 웃었다. 내가 예전보다 우는 일이 줄었고, 그래서 백설이 걱정이 크다는 걸 안다.

   “눈물 얼마나 남았는데?”

   백설은 한숨을 쉬었다.

   “하나.”

   나는 턱을 치켜들었다.

   “가서 내 생강빵 가져와. 그러면 아마도, 어쩌면… 오늘 밤엔 널 위해 울어줄게.”

   백설이 얼굴을 문지른다. 피곤해 보인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더니 말했다.

   “알았어. 라푼젤, 머리를 내려 줘.”

2

X

   세상의 빛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해가 저물고 있다. 나무의 날카로운 우듬지로 뒤덮인 긴 능선을 지나, 골짜기 저편에 있는 성의 꼭대기를 스칠락 말락 한다. 여긴 늘 춥다. 하지만 나는 창가에 서서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가득한 하늘을 내 두 눈에 담았다. 해돋이와 해넘이. 나의 세계가 색으로 물드는 유일한 때.

   온 세상이 초록빛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이 탑을 둘러싼 들판에서 놀곤 했었다. 내 발이 무언가 푹신푹신 따스한 것, 백설이 설명하기로는 ‘풀밭’이라는 것 위를 뛰어다녔다. 풀밭은 초록빛깔 머리 같고, 햇볕 냄새가 났다. 그러다 구름과 눈을 몰고 겨울이 나타나더니 영영 떠나지 않았다.

   겨울은 점점 자라나 온 나라를 뒤덮었다. 숲속 소나무도 이젠 회색이다. 검정색, 흰색, 회색.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색깔의 전부. 하늘은 자주 구름이 뒤덮고, 그러면 더 많은 눈이 쏟아진다. 나는 흰색이 싫다.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몸이 으슬으슬해 창문에서 떨어졌다. 생강빵을 구하러 간 백설은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때때로 하루가 영원처럼 느껴진다. 작은 양철 접시 있던 촛불을 집어들고 삐그덕대는 계단을 내려간다. 바로 아래층, 동굴처럼 춥고 어두운 이 방은 우리가 쓰는 침실이다. 백설과 내가 자는 널찍한 침대가 있다. 내 자리는 오른쪽이다. 옷을 넣는 궤짝, 초 두 개가 놓인 탁자, 그리고 내 책을 보관하는 함 하나.

   탁자 위에 촛불을 내려놓고 책이 든 함 앞에 무릎을 꿇는다. 사실은 그냥 나무 상자다. 백설은 내가 갓난아기 때 이 나무 상자 안에서 잠을 잤다는 얘기를 수천 번은 했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갓난아기 때 도둑맞았다는 내 쌍둥이 자매에 대해서도 난 신경 쓰지 않는데.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라고. 백설은 그런 이야깃거리가 또 어찌나 많은지.

   하지만 내 책들은 좋아한다. 제일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들고 침대로 기어오른다. 길게 땋은 내 머리채는 침대 옆 바닥을 지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 끄트머리는 여전히 위층에 남아 있다.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지금은 농장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위대한 모험을 하고 싶어 하는 가난한 시골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얘는 좋겠다. 이루어질 수도 있는 꿈이니까. 나한테 글을 가르친 걸 백설이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가끔 한다. 책이 아니었으면 나는 내 삶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도 까맣게 몰랐을 거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대부분 어머니, 아버지의 손에서 자란다는 것을 책에서 배웠다. 그리고 한 어머니에게서 두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자매라고 불린다는 것도. 백설은 자기랑 내가 자매라고 하지만, 우린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 이해해보려 노력했으나 여전히 모르겠다. 백설의 어머니는 이 나라의 왕자비였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신데렐라라는 이름의 다른 여자다. 신데렐라는 백설의 계모란다. 그래서 난 더 헷갈린다.

   나도 부모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으면 참 멋질 것 같다.

   책에서 남자와 소년에 관해서도 배웠다. 가끔, 아주 드물게 창밖을 내다보다가 숲속에 있는 남자를 본다. 멀어서 조그맣게 보이지만 내가 또 눈이 참 밝거든. 얼마나 웃기게들 생겼는지! 일단 남자들은 머리를 기르지 않는다. 낮고 이상한 음성에 팔뚝도 두껍다. 양쪽 다리에 꼭 맞는 옷소매 같은 것을 입는다(그런 게 ‘바지’라는 거겠지). 게다가 얼굴에도 머리카락이 자란다! 한번 가까이에서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배꼽을 잡고 웃거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둘 다 몹시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지.

   내 아버지란 사람도 남자다. 이름이 ‘에드거’라는데, 이 나라의 왕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돌아가신 지 오래라서. 내 어머니인 신데렐라처럼. 백설은 나더러 그 사람들을 그리워해선 안 된다고 한다. 둘 다 나쁜 사람들이었다면서. 하지만 난 백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꼭 한 번만이라도 두 사람을 볼 수 있었으면…. 그저 어떻게 생겼는지만이라도….

   안 돼. 눈을 빠르게 깜박인다. 난 울지 않을 거야. 에이, 이런 망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침대에서 뛰어내린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컵에 눈물을 받았다. 어쨌든 백설에게 약속했으니까. 이러면 백설이 이걸 얼려 두었다가 나중에 내다 판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 필요한 다른 것들을 구한다.

   여자애가 흘린 마법의 눈물은 흔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