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백설공주 

프롤로그

X

   신데렐라가 아바마마를 죽였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른다. 어쨌든 아바마마는 죽었다. 무덤에 묻힐 시신도 남기지 않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신데렐라는 그저 웃으며 네 아버지는 죗값을 치른 거라고 했다. 그 여자는 세상에 못할 짓이 없는 줄 안다. 자기는 여왕이니까.

   또한, 내 새어머니이기도 하고.

   내가 아바마마를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아바마마의 죽음을 갚아줄 수는 있다. 내 피부는 눈처럼 새하얗지만, 내 영혼은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신데렐라가 자신이 저지른 죄로 고통받게 할 것이다.

   내 이름이 ‘백설’인 것만큼이나 분명히.

1

X

   신데렐라가 나를 알현실로 불렀다.

   여왕은 단단한 크리스털로 만든 왕좌에 앉아 있었다. 농담 아니라 저토록 차갑고 단단한 바위 같은, 세상 최고로 엉덩이가 배기는 의자는 또 없을 거다. 대체 저런 걸 어디서 구해왔는지.

   “왔구나, 백설.”

   신데렐라의 음성이 텅 빈 알현실 안을 울리며 동굴 같은 천장에까지 솟구친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왕좌, 그리고 융단 하나 깔리지 않은 히끗히끗 검은 대리석 바닥뿐.

   “또 왜요?”

   나는 투덜대듯 물었다. 신데렐라는 대체로 날 내버려 두는 편이다. 터무니없이 요상한 일을 시킬 때를 빼고는.

   신데렐라가 아름다운 아이스 블루 빛깔의 눈으로 나를 본다.

   “가서 요정을 찾아오렴.”

   봐, 저런다니까?

   “요정?!”

   나는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미쳤어요? 세상에 그딴 게 어딨어요?”

   신데렐라가 웃는다.

   “없긴 왜 없니? 나도 한때 하나 갖고 있었는데.”

   “요정을 갖고 있었다고…?”

   “그래. 내 요정 대모님. 페어리 갓마더.”

   세상에. 진짜로 맛이 갔구나.

   “그럼 내가 찾을 수 있다고 치고, 요정으로 뭘 하려고요?”

   신데렐라가 배 위에 손을 얹는다. 검은 드레스 안에 멜론이라도 든 것처럼 배가 볼록하다.

   “아기한테 하나 붙여주려고. 수호요정으로.”

   아기. 어처구니도 없지. 결혼하고 7년간 없던 아기가 이제야 생기다니. 신데렐라가 임신 사실을 공표하자 온 나라가 환호했고, 아바마마까지 반기며 뿌듯해했다. 그토록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니, 부부싸움도 한 달간 멈췄고, 심지어 금실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우리가 한 가족이 된 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 후 신데렐라가 아바마마를 죽였다.

   나는 한숨을 지었다.

   “요정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숲에 가서 위험한 짓을 해 보렴. 낭떠러지를 따라 걸어보든가, 너보다 더 큰 짐승을 사냥해보든가. 요정들은 위험에 처한 사람 구하는 걸 좋아하거든.”

   나는 신데렐라를 노려보았다.

   “나더러 내 목숨을 걸라고요?”

   “못할 건 또 뭐니?”

   저 마녀! 온 나라가 저 여자의 참모습을 알아야 하는데. 얼마나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미친 여자인지를. 하지만 왜 그런지 온 백성이 저 여자한테 홀려 있다. 화사한 금발에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 꽃처럼 활짝 핀 스물네 살 짜리 여왕을 열렬히 숭배한다. 저렇게 으스스한 검은 드레스를 보고도 어떻게 눈곱만큼도 모를 수가 있는 건지.

   나는 팔짱을 꼈다.

   “난 오늘 별로 죽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하면 직접 찾아보시든가요?”

   신데렐라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걸, 백설?”

   “어머, 그래요? 안 그러면요?”

   “안 그러면 거울 앞에 데려갈 거거든.”

   뱃속이 싸해졌다.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다시는….

   “알았어요.”

   나는 풀 죽어 대답했다.

   “갈게요.”

 

   

2

X

   망할 놈의 요정.

   대체 내가 요정을 어떻게 찾아? 혹시 그걸 찾는다고 쳐. 그다음엔? 바구니에 담아서 성으로 가져와?

   정문 앞 흰 대리석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반달 모양의 계단은 아래로 갈수록 점점 넓어진다. 이 빌어먹을 계단 탓에 신데렐라가 왕비가 되었다지. 어느 날 밤 무도회장을 떠나며 여기서 구두를 잃어버렸는데, 아바마마가 그 구두로 신데렐라를 찾았다잖아.

   아바마마는 대체 저 여자의 뭘 보고.

   성을 에워싼 숲은 몇 킬로미터에 걸쳐 빽빽하고도 평탄하게 펼쳐져 있다. 다들 이 숲에 마법이 걸렸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숲이다. 신데렐라와 저 악마 같은 거울만 아니었으면 나는 마법의 존재를 절대 믿지 않았을 거다.

   치맛단이 초가을 낙엽을 쓸며 바스락 소리를 낸다. 나는 치마를 풍성히 부풀린 하얀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새까만 머리는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어 이제 허리께까지 온다. 사람들은 내가 예쁘다지만, 솔직히 난 그런 것엔 관심 없다.

   10분쯤 걷자 우물이 나왔다. 지붕도, 도르래도 사라지고 우물담 한쪽은 무너지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사과나무로 빙 둘러싸인 우물가 공터엔 볕이 잘 든다. 헌터는 무너지지 않은 쪽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붙잡는 바람에 늦었잖아. 오늘따라 신데렐라에게 더 짜증이 난 것은 이래서였다. 헌터와 나는 매일 정오에 여기서 만난다.

   “우리 공주님, 심기가 불편하신가 보네?”

   그러면서 헌터가 씩 웃었다. 그 웃음이 황금빛 기쁨이 되어 내 마음에 꽂혔다. 나는 그의 품에 뛰어들어 꼭 끌어안았다. 그런 뒤 그가 입을 맞출 수 있게 고개를 젖혔다. 헌터의 입술이 닿는 느낌, 마법이 따로 없다. 내 온몸을 녹이는 주문. 오직 나하고만 키스한 입술.

   “들으면 너도 어이가 없을 거야.”

   나는 폴짝 뛰어 우물 위에 앉았다. 곁에 앉은 헌터가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나는 신데렐라가 내게 명한 미치광이 같은 임무를 설명하는 내내 헌터의 수려한 이목구비, 갈색 머리, 갈색 눈, 그리고 부드러운 옆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열아홉 살 나무꾼인 헌터는 세상 최고로 사랑스러운 소년이다. 헌터가 너무 좋아 죽을 지경이다.

   “요정….”

   “알아. 말이 안 되지.”

   “아니요…. 몇 번 본 적 있어요.”

   “요정을 봤다고?”

   “깜박이는 빛과 그림자를 본 것뿐이지만. 요정들은 눈에 띄기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저처럼 숲을 자주 돌아다니면… 공주님도 보게 되실 거예요.”

   “하지만 그런 요정을 어떻게 잡아? 그 미친 여자는 내가 위험에 처하면 요정이 구하러 나타날 거래.”

   그 말에 헌터가 웃었다.

   “그럼 제가 우물로 확! 떠밀어 넣어드릴까요?”하면서 별안간 내 팔을 덥석 붙잡아 미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나는 꺅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유, 귀엽게 굴기는!

   “그보다 여왕님께서 왜 요정을 구하시는지가 더 궁금한데요?”

   “아, 그거? 그 얘기도 했어. 곧 태어날 아기를 보호할 요정이 있어야 한다던데?”

   “그래요? 아기를 왜 보호해야 하는데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 여잔 미쳤으니까.”

   헌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여왕님도 나름 이유가 있으실 거예요. 공주님께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기를 가진 건 기뻐하시나요?”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풍성한 흰 치맛자락 밑으로 발목을 교차했다.

   “좋아해. 아바마마도 그랬고. 둘이 아기 얘기를 하곤 했었어. 그러다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헌터가 나를 끌어당겨 뺨 위에 입을 맞췄다.

   “우리도 확실한 건 모르잖아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여자 짓일 게 뻔해. 신데렐라는 아바마마를 미워했어. 그 여자가 사랑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야.”

   으휴, 하마터면 ‘거울’이라고 할 뻔했다. 헌터는 거울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거울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왕님과 앉아서 차분히 대화를 나눠보시는 건 어때요? 어쩌면 공주님께 마음을 여실지도 몰라요.”

   “어우 헌터, 제발. 그러기엔 이미 늦었어! 내 인생에 끼어든 이후로 그 여자는 독극물일 뿐이야. 아바마마와 결혼한 첫해엔 날 꼬박꼬박 ‘의붓딸’이라고 부르더니, 이젠 내 방을 제일 작은 탑으로 옮기게 했어. 난 거기서 밥도 혼자 먹어. 바닥에 온통 촛불을 늘어놓고.”

   헌터가 나를 쳐다보았다.

   “뭘 늘어놔요?”

   “촛불. 이젠 방이란 방, 복도란 복도에 다 늘어놨어. 밤이면 사람들이 바닥에 있는 불빛에 비쳐서 얼마나 으스스한지 몰라. 그뿐인 줄 알아? 신데렐라는 갈수록 내 드레스를 더 크게, 더 부풀려서 지으라고 해.”

   헌터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공주님 생각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마마가 살아계실 때는 차마 직접 무슨 짓을 할 순 없었겠지. 그래도 걸핏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사고를 당하는지 떠들댔어. 나한테 잘 자라고 하는 대신 ‘조심하렴, 백설.’이라고 했지. 매번 빙그레 웃으면서. 그 인사를 들은 뒤 나는 좁은 계단을 올라 탑에 있는 작은 내 방으로 가야 해.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활활 타는 촛불 속을 지나서.”

   헌터가 어깨를 조금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별도리가 없었는데 뭐. 그런데 그 여자가 나한테서 아바마마를 빼앗아간 거야…. 아바마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바마마는 ‘내 것’이었어. 그러니 그 여자는 이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해.”

   “하지만 우리가 뭘 어떻게 해요?”

   나는 웃으며 손을 들어 헌터의 숱 많은 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때가 되면, 우리가 아기를 훔치는 거야.”